강박증을 앓는 주인공을 통해 본 강박증상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강박증을 겪고 있는 환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다. 이 영화를 통해 강박장애란 무엇이며 어떤 속성을 갖고 있고 증상은 어떻게 나타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이 영화는 단순한 강박증 환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좁게는 강박장애를 가진 환자가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을 지녀야 증상으로부터 벗어나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는지 담고 있으며, 더 근본적인 주제는 강박증을 삶에 대한 한 태도로서 바라보았을 때 발견할 수 있다.
영화는 강박증을 겪는 주인공의 삶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점검하게 한다. 정도의 차이로 우리는 주인공처럼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불안이나 두려운 상황을 통제하거나 회피하는 행동을 자주 하며 살고 있다.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행동의 일부는 그렇게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삶을 살면서 우리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과 그럴 수 없는 영역을 분별하고 후자에 대해서 통제하려는 집착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다.
더군다나 삶은 많은 불안과 고통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것을 모두 통제하고 제거하기란 불가능하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크고 작은 불안과 괴로운 상황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랑이다. 어떤 불행이나 고통도 겪지 않겠다고 다짐한다면 그로 인해 삶은 더 불행해질 것이고 제대로 삶을 살 수도 없다. 삶에서 벌어지는 불행한 일들, 불쾌한 것들, 괴로움을 유발하는 것들 이 모두를 통제하면서 살 수 있을까. 통제하는 방법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법이 훨씬 더 이롭다. 삶의 불확실함, 불가피함, 예상할 수 없음 같은 속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 능력은 어떻게 갖출 수 있는가. 영화에서 그것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마지막 장면을 눈여겨보라. 심한 강박증상을 겪었던 주인공이 영화의 마지막에 보여준 행동을 음미해보길 바란다. 여기서 사랑은 단순히 누군가와의 사랑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을 통해 주인공은 자신이 불안을 통제하기 위해 했던 강박행동이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즉 불안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은 누군가의 사랑을 통해 스며든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너그러움, 연민의 마음을 통해 나온다. 불안해도 괜찮고, 불안은 이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며 그저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삶의 일부분으로서 받아들인다. 그러니 더 이상 불안을 제거하려는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아도 괜찮고, 불안이 찾아와도 그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강박행동에 대한 이해
영화에서 보이는 주인공의 행동은 강박장애를 가진 사람의 증상이다. 영화 도입부에서 문이 잠겼는지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행동은, 부주의로 인해 벌어질지도 모르는 사고에 대한 불안을 반영한다. 가장 두드러진 증상이었던 결벽적인 손 씻기와 청결에 대한 집착, 주변 사물과 사람들의 접촉을 최소화시키려는 행동 등에는 오염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된다. 또한 영화의 메시지이자 마지막 장면을 인상적으로 만들어준 금을 밟지 않으려는 행동은 인생에서 벌어질지도 모르는 예기치 않은 불행이나 사고에 대한 불안으로서, 금을 밟지 않으면 그런 비극적인 결과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자기 미신적 행동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의 하위 유형으로 증상들을 분류할 수 있지만, 이 기저에 있는 심리적 이유는 모두 불안 때문이다. 정확히는 불안을 해석하고 다루는 태도와 관련 있으며, 이것은 곧 영화가 인생에 대한 성찰과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태도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방향으로 확장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살다 보면 어떤 충격적인 사건이나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일이 발생한 뒤에 오는 감당하기 어려운 불안과 스트레스, 두려움 등을 겪는다. 때에 따라선 완전히 압도되어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위협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럴 때, 그것을 참지 못하고 억누르거나 통제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불안을 야기한 사건이나 상황을 개선하기에는 본인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어려움을 느끼거나, 통제하고 싶은 불안의 정도가 너무 크면 우리의 뇌는 그보다 사소해 보이거나 통제하기 쉬워 보이는 대상을 향해 불안을 옮긴다. 종로에서 뺨을 맞고 한강에 가서 화풀이한다는 속담이 그대로 재현된다. 감당할 수 없는 불안을 어떻게든 통제하고 없애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으니 보다 컨트롤하기 쉬운 대상으로 옮겨진다. 문이 잠겨있는 것을 반복적으로 확인한다든지, 손 씻기를 반복한다든지, 금을 밟지 않는다든지 하는 강박 행동을 함으로써 불안을 통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불안의 진원지는 비누나, 잠금장치, 가스밸브, 바닥의 금에 있지 않다. 이런 행동을 통해 불안을 해소(통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불안을 다루는, 혹은 삶을 살아가는 두 가지 태도
영화의 로맨틱한 순간들에서조차 주인공은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함께 걷지 못하거나 춤을 추지 못하고 식당에서 건네준 드레스코드를 바로 입지 못하면서 신경질을 낸다. 사랑이 무르익어야 할 순간에도 불안을 참지 못한다. 영화는 강박증을 겪고 있는 주인공과 연인과의 로맨스 사이에서 계속 엇박자 난다. 이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두 가지 태도를 반영한다. 주인공의 강박행동은 삶에서의 불안이나 고통, 시련, 슬픔과 같은 여러 부정적인 요소들을 부정하고 통제하려는 태도다.
반대로 연인에 대한 사랑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은 인생의 행복이나 즐거움, 기쁨을 위해서는 불안으로 대변되는 삶의 부정적인 요소들까지도 받아들여야만 가능해짐을 말한다. 대체적으로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데 이 두 가지 태도 사이를 반복하면서 성장해간다. 외로움, 고통, 슬픔, 불안 같은 것을 외면하고 통제하면서 살아갈 때 어쩐지 삶 속에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없다.
즐거움, 행복, 사랑과 마찬가지로 부정적으로 여기는 감정들 역시 삶과 우리를 연결시키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한쪽 면만을 선택적으로 차단할 수 없다. 고통스럽고 싶지 않다면 행복을 포기해야 하고, 행복하고자 한다면 고통 역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인생의 재밌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사랑을 위해서 자신의 불안을 받아들인다. 그녀와 함께 들어가는 빵가게 앞에서 자신이 무심코 금을 밟고 있었음을 잠시 바라보다 이내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간다.
이 마지막 장면을 통해, 불안은 삶에서 완전히 제거해야 될 대상이 아니라 사랑과 더불어 받아들이며 함께 살아가는 것임을 보여준다. 괴팍하기 이를 데 없는 주인공이 사람들과 세상에 마음을 조금씩 열며 자신과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사랑의 힘에 있다. 그렇다면 사랑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녀에게 칭찬하고 고백하는 대사 안에 힌트가 있다. 사랑은 원래 알고 있던 나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상대의 가치를 알아보고 사랑을 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감을 높인다.
이 두 가지 마음은 자신의 부족한 면까지도 있는 그대로 수용하게 하는 힘이 된다. 나아가 이미 충분하지만 자신과 상대에 대한 존중감에서 개선의 여지를 찾는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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