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기질인 민감성에 대한 편견
나는 서른이 넘어서야 내가 남들보다 타고난 '민감성' 기질임을 알았다. 그전까지만 해도 소심한 성격, 혹은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인 성격, 사람들 앞에서 매우 긴장하고 불안해하는 자신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느 누구도 정서적 공감 능력이 높아서 생기는 불편함이라고 얘기해준 적이 없었다. 뒤늦게야 스스로 찾아간 상담소에서 자신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었다. 세 분의 상담 선생님을 만났는데, 모두가 나의 타고난 기질에 대해 말해주셨다.
남들보다 공감 능력과 감수성이 예민한 것은 때론 살아가면서 불편함을 야기할 때도 있지만, 반대로 누군가의 아픔이나 고통을 잘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사회의 귀한 존재라고 말씀해 주셨다. 고통이나 슬픔, 외로움과 같이 남들이 외면하고 싶은 부정적 감정들에서도 깊이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간편한 것, 그럴듯한 것, 이미지나 포장지가 중요해진 요즘에 더욱 필요하고 귀하다고 지지해주셨다.
인간은 상처받은 이야기, 보잘것없다고 여기는 자기 삶과 모습들을 감추고 억누른 채 행복해질 수 없다. 그게 아니더라도 인간이라는 존재는 언젠가 한 번쯤은 '진짜' 자신을 알고 싶고 그렇게 살고 싶어 한다고 믿는다. 그것도 아니라면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고 이해받고 위로받길 원하기 때문이다. 내가 상담소의 문을 두드린 것도 그 때문이니까. 지금에서야 나는 내가 지닌 타고난 기질인 정서적 공감능력의 민감성을 받아들인다. 그것이 주는 불편함보다 얻는 것이 더 많다는 걸 깨닫고 산다.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민감성에 대한 최초의 논의
심리학계에서 '민감함' 혹은 '민감성'에 대한 논의는 심리학의 역사에서 거의 최근이라고 할 수 있다. 그전까지는 에세이 장르에서나 자신의 '소심함과 수줍음'에 대해 용기 있게 꺼내놓으며 당신의 소심함은 혼자 겪는 게 아니니 그래도 괜찮다는 위로의 메시지가 전부였다. 일부 소심함은 타고난 정서적 능력이 남들보다 높아서 생기는 문제라고 언급한 것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전문적인 연구 결과가 아닌 개인의 목소리에 가까웠다.
그만큼 소심한 성격으로 쉽게 판단내렸고 내성적이라는 단어는 지금까지도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최근에는 내성적인이라는 단어 대신 내향적인, 외향적인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일레인 아론이 쓴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은 매우 신선하고 좋은 의미의 충격을 남겼다.
일레인 아론 역시도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상처와 어려움을 겪었으며 성인이 돼서도 많은 문제를 겪었다. 그러던 중 심리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민감성'을 심리학의 영역에서 연구했다. 그는 오랜 연구와 논증을 통해 1997년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을 출간했다.
이 책은 심리학계는 물론이고 일반인들에게까지 호응과 지지를 얻으며 베스트셀러가 된다. 어떻게 보면 '학계'라는 공식적인 제도와 승인 아래 우리의 '수줍음과 민감성'이 인정받으며 물꼬를 터준 셈이다(이 외에도 민감함에 대한 심리학 분야의 서적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출간된 <나는 초민감자입니다>라는 책은 지나친 공감 능력을 가진 사람들(엠패스)이 자신을 지키고 조절하면서도 효과적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침서다).
민감성과 창의성
사회적 다양성을 표현하고 목소리를 내는 시대적 흐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더 이상 민감하고 내성적인 사람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지닌 타고난 민감성을 장점으로 여긴다. 높은 민감성은 창의성과도 연관되기도 한다. 어느 영역에 민감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창의성이 필요한 예술 분야에 이런 기질은 장점으로 작용한다.
정서적 공감 능력이 높은 사람은 사람들의 아픔과 상처를 어루만지고 위로하며 때론 사회의 위선과 부조리를 날카롭게 비판하기도 한다. 신체 감각이 민감한 사람은 댄서나 발레와 같은 신체 예술 분야에서 그 능력이 발휘되다. 요즘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영화감독, 배우, 음악 창작자, 가수까지 다양한 탤런트를 지닌 유명인들이 게스트로 출연하는데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내밀한 상처와 아픔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들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창의성이 요구되는 예술가들이다. 그들은 타고만 기질인 민감성으로 남들보다 상처와 고통에 더 힘들어하지만 자신의 기질을 오히려 장점으로 기능할 수 있게 전환시킨 것을 보면 배울 점이 있다. 깊이 느낌 아픔과 상처를 어떻게 표현하고 승화시켰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자우림 김윤아와 감독이자 배우인 양익준 편은 자기 상처의 승화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어떻게 창작자가 사람들과 사회와 연결되고 '치유'하며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영감과 인사이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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