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미달이로 잘 알려진 배우 김성은이 아역배우 이미지를 벗고 오랜만에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같이 눈물이 났다. 자아정체성 혼란 경험을 아역배우라는 직업을 통해 극적으로 드러난 것 같지만 사실 우리도 이런 정체성 혼란을 경험하기도 한다.
자아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청소년기
자아정체성이란 스스로 생각하는 확고한 자기 자신의 상을 말한다. 절대적인 속성이긴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아정체성은 한 번 형성되면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가치체계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에릭슨의 자아정체성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한 인간으로서 다른 사람과 동일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과 자신을 구별하게 하는 개별성을 전 생애에 걸쳐 반복하며 발달시켜 나간다고 한다. 에릭슨의 자아정체성 이론에서는 전 생애의 발달과정을 8단계로 분류하였다. 전 단계 발달 과업을 성취한 뒤에 이를 바탕으로 다음 단계를 진행시키는 방식을 띤다.
그중에서도 12세부터 18세에 해당하는 청소년기는 개인의 자아정체성 형성에 매우 중요한 시기로 본다. 유아 시기에는 특히 부모의 행동과 태도 등을 내면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때 개인이 갖는 특성들과 부모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상호작용하면서 초보적인 수준의 자아정체성이 형성된다. 에릭슨의 자아정체성 이론은 프로이트 이론을 확장시킨 개념으로 자아의 형성과 발달과정에 초점을 두며 사회적 영향력을 중요하게 보았다.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12세부터 18세 시기에 개인은 부모 이외의 다양한 사회적 환경과 대상과 접촉하면서, 본격적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자아정체성을 형성한다. 청소년기에는 신체적 변화, 다양한 심리적 요인들 겪는다.
또한 사회 환경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자문하며 이러한 사회적 요인들을 통합하여 자아를 조정하고 적응해나가기 위한 노력의 시기다. 청소년기에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자아정체성이 본격적으로 자아정체성이 형성되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자아정체성 혼란 사례, 아역 배우
아역배우들이 겪는 심리적인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아역 배우들이 겪는 심리적 문제는 자아정체성의 혼란이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직접 지켜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지만 당사자에게는 자아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시기에 너무 이른 시기에 어른들의 세계에 편입된다.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려면 외부 환경과 사회와 접촉을 통해 지속적으로 자신을 탐색하는 시간이 필수적이다.
아역배우들의 대게는 이 자기 탐색과 내면 성찰의 시간이 확보되지 않은 채 영화 혹은 미디어 제작환경이라는 어른의 세계에 노출된다. 나는 누구이고 무엇인지 탐색하는 과정 속에서 자아정체성은 형성된다. 이는 외부 환경이나 가치에 자아가 흔들리거나 잃어버리지 않는 힘을 마련하는 동시에, 또다시 몇 차례 외부 환경과 가치체계와 갈등상태를 다시 겪고 음미해보면서 자아정체성을 보다 세련되고 입체적으로 발달시키는 발판이 된다.
하지만 수많은 아역 배우들은 역할을 맡은 캐릭터 이전에 자기 자신에게 반드시 던져야 할 의문조차 생략되는 셈이다. 아역배우들의 심리적 문제는 자아정체성 혼란의 대표적 사례라고 생각한다. 90년 말에 한국에서 방영되었던 한 시트콤은 국민적 인기를 얻었다.
12살의 김성은은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 출연해 이 같은 자아정체성 혼란의 모습을 드러내었다. 한국 여자 아역배우들 중에 대중적으로 가장 큰 인지도가 있었던 김성은은 여전히 12살의 자기 자신과 당시 자신이 연기를 맡았던 캐릭터 사이의 구분을 하지 못했다.
우리가 흔히 매소드 연기라고 부르는 것은 배우가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자신의 생각 감정 가치를 완전히 이입시켜서 펼치는 연기를 말한다. 이러한 매소드 연기는 연기 경험이 풍부한 노련한 중년 배우들조차 힘들어하는 방법이다. 어떻게 보면 한국 여자 아역배우들은 강제적으로 매소드 연기를 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한국 여자 아역배우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나라 미디어 제작 환경이 해외에 비해 매우 타이트했으며 척박함을 말하고 싶어서다. 그러니까 해리포터 시리즈와 비교할 수 있다. 아역배우들의 인터뷰에서 그들도 자아정체성 혼란과 관련된 심리적 고통을 자주 언급하였다.
상대적으로 어린아이들이 편하게 연기할 수 있는 환경과 태도가 갖춰졌는데도 그것과는 무관하게 이들 역시도 자기가 맡은 캐릭터와 실제 자기 자신을 구분하지 못해 힘들었다고 말한다. 한국 아역배우들은 살인적인 촬영 스케줄과 불친절하고 예민한 환경 속에서 더욱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서 보여준 그녀의 고민과 심리적 문제는 근본적으로 이러한 자아정체성 형성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혹독한 어른의 세계에 노출될 수밖에 없던 자아정체성 혼란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실제 캐릭터의 나이인 초등학교 저학년 12살 김성은은 20년도 지난 자신의 캐릭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금쪽 상담소에서 진행된 이미지 실험에서 그녀는 당시 실제의 어린 김성은과 캐릭터 이미지 둘 사이를 동일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녀가 떠올리는 당시의 김성은은 불안하고 바빴으며 외로웠다고 말했으며, 미달이에 대해선 유일하게 '피곤함'을 떠올렸다.
정체성 혼란과 함께 부정적 자아상에 영향
만약 그들이 충분한 시간 동안 실제 자신과 삶을 탐색하고 형성시키는 시간을 갖은 뒤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힘든 상황에 마주하더라도 스스로 보호할 힘이 있었을 것이다.
촬영 현장의 환경과 연기하는 캐릭터를 명확히 인지하고 그로부터 오는 압박감과 긴장감, 피로와 스트레스의 부정적 영향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며 회복할 힘이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한국의 혹독한 방송 시스템은 자아정체성 혼란에 더해서 그릇되고 부정적인 자아상을 심어주었다. 부정적인 자아상은 이후의 삶의 태도나 대인관계 방식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아가 형성되기도 전에 겪은 외부의 해로운 영향들은 고스란히 자아의 영역으로 흡수되어 그녀의 자기상과 대인 관계, 삶에 대한 가치관과 태도 등 거의 모든 삶의 영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당시의 김성은은 3년간 지속된 살인적인 스케줄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당시의 촬영 현장은 지금보다 혹독하고 불친절했다.
이런 환경과 일정은 어른이 된 성인 연기자들도 힘든 일이다. 촬영 분위기는 매우 예민하고 신경질적이었으며, 비몽사몽 간에 연기해야 했던 그녀는 자주 어른들이었던 스태프들과 선배 연기자들에게 혼이 났다고 한다. 아침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일정에 다들 피곤하고 예민했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누구도 어린아이일 뿐인 그녀를 이해하고 수용해주지 못했다.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이 늘 마지막 차례에 있었던 자신의 연기를 노려본 채, 불안과 압박을 느끼며 연기해야만 했다. 우리에게 보인 말괄량이 미달이의 실제는 어둡고 우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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