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과는 다른 느낌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 출연한 영화감독이자 배우 양익준은 영화 똥파리를 연출하고 직접 연기하면서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영화 속 폭력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그가 말한 고민은 사람들이 자신을 만만하게 본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실제로 익준을 그렇게 본다기보다 자신이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를 너무 낮추는 말과 행동을 하고 있었다. 겸손은 기독교나 특히 동아시아권 문화에서 중요한 미덕으로 생각한다. 겸손이란 자신의 불완전함과 부족함을 인지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이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상대에게 드러내는 자세다. 이를 통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는 태도 중 하나다. 관계를 중요시하는 동양권 문화에서는 강조되는 태도 중 하나였다. 기독교에서는 7대 죄악 중 하나로 교만을 지적한다. 때론 지나치게 겸손한 자세는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분을 나쁘게 할 수 있다. 누가봐도 남들보다 한 분야에 뛰어난 업적이나 인정을 받는 사람이 자신을 지나치게 깎아내린다면 겸손이 아닌 교만함으로 비칠 수 있는 것이다. 겸손한 자세는 자기를 상대보다 무조건 낮추는 태도가 아니다. 자존감을 가지고 자신의 위치를 어느 정도 자각한 선에서 겸손함의 태도를 보이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겸손이다. 겸손한 사람은 이 점을 인지하며 적절한 수준에서 겸손의 정도를 조절한다. 그런데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 출연한 양익준이 털어놓은 얘기들은 이런 겸손의 느낌과는 어딘가 부적절해 보인다. 양익준의 경우 배우로서 감독으로서 이미 대중이나 영화계에서 인정받고 능력있는 사람이다. 누구도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그는 욕설까지 섞어가면서 자신을 낮추려고 하는 걸까. 겸손이 도를 넘어 자기비하와 자기혐오로 이어지면 그것 역시 교만이 될 수 있다. 양익준은 겸손한 사람이 아니라 교만한 사람이라 그런걸까? 자기비하와 자기혐오가 강한 사람일까? 그렇다면 그는 어린시절 유년기에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걸까? 그는 왜 스스로 자신을 깎아내리면서까지 낮추는 걸까. 양익준은 말했다. 이런 태도는 '가능하면 상대를 존중하려는 마음, 나를 아무렇게나 대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를 아무렇게나 대해도 괜찮다'라는 메시지를 왜 전달하려는걸까.
약자에게 가해지는 부조리한 폭력
양익준의 어린시절 유년기는 폭력으로 점철되었다. 동급생 간의 싸움에서 아무 상관없는 그가 얻어맞았던 일을 처음 꺼내놓았다. 이어 어머니에게 가해지는 아버지의 폭력을 어렵게 이어갔다. 폭력적인 성격의 아버지는 물리적으로 힘이 약한 어머니에게 폭력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영화 똥파리에서 나온 이야기와 장면들은 그의 어린시절 폭력적인 유년기가 투영돼 있다. 물리적으로 힘이 약한 약자인 여성을 상대로 근육을 지닌 힘 센 남자가 폭력을 휘두르는 상황을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 남자가 바로 자신의 아버지란 것도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자리한 듯 했다. 실제로 아버지의 폭력 장면에 노출되었고 그 역시 맞았을 것이다. 그는 이런 어린시절 유년기 트라우마를 똥파리라는 영화로 풀어내었다. 그는 어린시절 트라우마를 그저 상처로만 남겨두지 않았다. 어린시절 유년기의 폭력 경험은, 특히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휘둘러지는 강자의 폭력이라는 문제에 대해 깊이 천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리적이건 사회적 위치에서건 차별을 받고 그저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그보다 힘이 센 사람들에게 폭력을 당하는 사회적 약자의 문제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양익준은 그렇게 어린시절 트라우마를 견디는 방법으로 폭력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화두에 깊이있게 물고 늘어지면서 영화와 연기로 분출하고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양익준은 아버지의 무자비한 폭력에 당하는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힘없이 당하고 있는 약자들에 대한 연민이 커졌고 반대로 강자들의 폭력에 대해서는 강한 적개심과 분노를 갖게 되었다. 어머니(여성)로부터 사회적으로 힘없는 약자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의 감정으로 확장되었고, 힘을 가진 아버지의 가정 폭력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가해지는 부조리한 폭력성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나아갔다. 양익준 개인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영화 똥파리에는 그렇게 가정 내에 일어나는 폭력이 사회적 폭력과 맞물리고 어떻게 대물림 되는지 비판적으로 보여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약자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따듯함 또한 담겨있는 것이다.
폭력적인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는 다짐
자기비하에 가까운 겸손한 태도의 기저에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에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자기부정적 감정(시선) 또한 한 몫 했으리라 생각된다. 어린아이는 힘이 없기 때문에 어머니가 폭력에 당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이런 자괴감과 더불어 부조리한 폭력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 약자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이 내면 깊숙이 자리한 듯하다. 그리고 폭력에 대한 그의 비판적 태도는 일종의 자기 다짐적 성격이 강하다. 잘못된 아버지의 행동을 보며 '나는 아버지처럼 되지 말아야겠다'는 분노 섞인 다짐 말이다. 밑바닥까지 자신을 낮추는 말과 행동에는 '나는 아버지처럼 약자들에게 폭력들 휘두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안심하고 저를 함부로 대해주십시오'라는, 상대를 향한 무의식적인 제스처이자 메시지 전달 방식이다. 그는 아마도 이런 다짐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계속 밀어낸 것으로 보인다. 사람을 싫어해서 밀쳐낸 것이 아니라 약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는 분노 섞인 다짐 때문에. 그래서 그는 사람과 사랑을 누구보다 원하고 그리워했지만 쉽사리 마음을 열 수 없는 내적 딜레마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러다가 서른 쯤에 만난 한 여자의 사랑 덕분에 그는 조금씩 사람들과의 관계에 마음을 열 수 있었다고 말한다. 자신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어른스러웠던 그녀는 익준의 모든 것을 사랑으로 감싸주었다. 단순히 이성적이고 연애적 감정이 아니라 인간적이고 조건 없는 사랑으로 익준을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그 친구의 따듯함과 사랑을 통해 양익준은 조금씩 이성과 사람에 대한 경계를 풀었다. 사랑의 힘으로 사람들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고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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